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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원우 성공수기
학창시절 꿈도 많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자신감을 갖고 생활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40대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20년 가까운 직장생활로 무뎌진 몸과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아주대 MBA의 문을 두드리고, 입학이 확정된 순간부터 ‘잘 할 수 있을까? 졸업 못하면 어떻게 하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결혼 후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언젠가부터 ‘꿈’이라는 단어와 ‘하고 싶다.’라는 말은 사라지고 ‘어떻게 하면 직장생활을 좀 더 오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모든 것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가족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가장으로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점점 더 워커홀릭이 되어갔었다. 그래서인지 직장생활은 순탄한 편이였다. 하지만 가정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첫째 아이를 사산하면서 심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둘째 아이를 순산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13년 7월 미숙아로 태어난 셋째아이가 인큐베이터에서 약 한 달을 살다가 먼저 떠나갔다.
아내가 셋째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나는 여전히 워커홀릭이었다. 새벽 별을 보고 출근하고 저녁별을 보면서 퇴근을 했다. 주말도 나의 자리는 언제나 사무실이었다. 부부가 함께 한다는 정기적인 산부인과 검사도 아내가 혼자 다녔다. 그런데, 정기검진을 갔던 아내가 병원에서 뱃속에 있는 아이의 상태가 좋지 못해서 입원을 해야 한다고 연락을 해 왔다. 급하게 휴가를 내고 아내를 입원시켰다. 아내를 입원시키고 직장으로 돌아와 아내의 병간과 이제 만 세 살인 아이를 돌보기 위해 다시 휴가를 신청했다. 휴가를 신청하면서 믿었던 상사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가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꼭 휴가를 나가야 돼?, 장모님이나 어머님이 안계시나?” 그 때 모셨던 상사가 한 말씀들은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다. 30분이 넘는 훈계를 듣고 겨우 휴가를 얻어 나왔다. 입원 며칠 후 아내는 셋째아이를 출산했다. 셋째아이는 2013년 7월 8일 450g의 작은 몸으로 태어나 인큐베이터로 바로 이송되었다. 출산 후 아이가 생각보다 건강하다는 의료진의 말씀에 어느 정도 안심은 되었으나 너무나 작은 아이의 모습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2013년 7월 11일 다른 사무실로 발령을 받아 셋째아이 출산 나흘 후 출근을 했다. 바뀐 사무실의 분위기를 익힐 겨를도 없이 오전에 사무실 사람들과 인사 후 다시 병원으로 갔다. 그 주 주말에 아내는 퇴원을 하여 산후조리원으로 옮기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다시 직장에 출근했다. 다행이 바뀐 사무실에서는 아내와 아이에 대해 많이 걱정을 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하지만 셋째아이는 태어난 지 한 달하고 5일 후 우리가족의 곁을 떠났다. 아이를 보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없었다. 아내와 딸에게 어떤 아빠로 기억될지 고민이 되었다. 주중은 할 수 없지만, 주말은 가족과 함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며 바뀐 업무에 익숙해지고 가족도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아내가 다시 임신을 했다.
아내와 자주 이야기하며, 지금 함께 있는 아이와 앞으로 함께할 아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심어주고 본보기가 되어 주자고 약속을 했다. 아이들에게 아빠도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들을 적었다. 첫 번째는 가족과 함께 마라톤 경기에 참여하는 것으로 정했고, 두 번째는 아빠도 함께 공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정했다. 이렇게 적은 내용 중에는 아직 골프를 치진 못하지만 가족이 모두 골프를 배워서 함께 라운딩 하는 것도 포함시켰다. 종이에 적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일 것 같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 둘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공부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알아봤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동료가 아주대학교 경원대학원에 재학중이였고 그 동료를 통해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에 대해 자세히 소개를 받고, 지원하여 입학을 했다.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꿈을 실행에 옮기면 현실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대학원 생활은 나에게 큰 활력소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작년 5월에 있었던 제8회 도서관의 날 행사에서는 시 공모전에서 ‘입선’을 하여 아내와 딸아이에게 자랑도 할 수 있었다. 작년 6월에 태어난 아이는 돌잔치를 하고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그리고 그 해 9월에는 가족과 함께 대구에서 있었던 핑크리본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5km에 참가하여 열심히 걷다왔다. 딸아이는 지금도 그 때 받은 완주메달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대학원 입학 및 진학 등 일련의 일들이 나의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진 않았지만 내 마음가짐과 생각엔 엄청난 변화를 주었다. 무엇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인생 후반부를 설계하고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것 같다.